가족, 로하스로 사랑하다

[5월테마③] 아버지와 아들의 첫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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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 되신 아버지들이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자식이 어렸을 때 더 많이 놀아주고 사랑한다 말해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여기 지금의 아버지와 미래의 아버지가 될 아들이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다녀 온 여행기가 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깊은 대화에는 술만이 아닌 일상을 벗어난 여행 역시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Let’s LOHAS’ 5월 ‘우리는 가족’의 세 번째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의 첫 여행 이야기입니다.

 

‘아빠 친구 딸’덕(?)에 급조된 부자(父子)여행

 

아버지와는 원래부터 사이가 좋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축구를 함께 한 후 목욕탕에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좀 더 장성해서는 가게를 도와드리면서 술도 한잔씩 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툭 한마디를 던지셨습니다.

“아빠 친구 딸은 항공사에서 일해서 맨날 엄마 모시고 여행 간다더라.”
이 세상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엄친아, 엄친딸의 이야기가 시작되려고 하는 찰나, 저는 말했습니다.

“알았어, 아빠! 그럼 우리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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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카이도, 아버지와 나의 첫 여행지

 

여행지 결정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여유시간은 단 4일. 선진국으로 음식이 입에 맞아야 하며, 한적하면서도 볼거리는 있어야 하는 곳은 일본, 그 중에서도 훗카이도로 정했습니다. 비행기로 2시간 반이면 도착하고 대도시이면서도 도쿄나 오사카보다는 북적거림이 덜하고 온천도 즐길 수 있는 여행지였습니다.

여행지가 정해지자 아버지는 여동생을 붙잡고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아리가또(감사합니다), 아노 스미마셍(실례합니다), 고레오 구다사이(저거 주세요)”

 

 

천천히… 천천히…
타지에서 실천하는 magic30운동과 인연

 

여행 첫 날. 삿포로 근교 치토세 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한시가 다 될 무렵이었습니다. 배고픔을 참으며 삿포로 숙소를 찾아 부리나케 체크인했습니다. 훗카이도 유명 게 요리 전문점인 ‘카니혼케’의 런치메뉴를 즐기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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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로 일인당 6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부자간의 여행 첫 특식으로 결정한 메뉴였습니다. 하지만 다다미방에 앉은 후 종업원이 가져 온 물 한 잔을 마신 후 ‘런치메뉴는 마감됐다’는 말을 듣는 순간 뜨끔함이 가슴을 훅~훑음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계획에서 조금(실제는 2배 이상의 금액)넘는 금액이 아깝지 않게 모든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며 즐겼습니다. 의도치 않게 로하스아카데미(풀무원 생활습관힐링센터)에서 실천하자는 magic30운동(30분식사, 30번씹기, 30%적게먹기)을 먼 타국에서 충실히 이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 magic 30운동은 여행 내내 이어졌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삿포로에서 유명하다는 양고기 전문점에서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자신이 주문한 김치를 내어주셨던 단골 아저씨와 맥주를 서비스로 주셨던 주인 내외분, 훗카이도 대학 구내식당에서 만났던 한국인 유학생, 선술집에서 일본소주(사케)를 추천하던 아주머니까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밥을 천천히 먹는 것만으로도 삶이 충만해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fa3_08<식사하시는 아버지>

 

 

넓은 도야호수 곁,
아버지와의 뜨거운 대화

 

둘째 날의 여행지는 도야호수로 잡고, 숙소는 아버지가 가장 기대하셨던 료칸으로 정했습니다. 료칸은 일본식 온천이 딸린 고급 숙박시설로 아침, 저녁이 제공되고 전통의상도 입어볼 수 있는 곳입니다.

오후의 도야호수는 조용했습니다.

fa3_01<오후의 도야호수 전경>

호수를 둘러싼 숙박시설 두 세 곳이 성업 중이고, 유람선이 시간에 맞춰 뱃고동을 울렸지만 주변엔 변변한 식당도 유흥업소도 없었습니다. 가끔씩 들려오는 초등학생들의 웃음소리만이 이곳이 수학여행을 올만큼 괜찮은 곳임을 일깨워 주곤 했습니다.

호숫가를 아버지와 산책하고 유람선을 타니 조촐한 불꽃놀이가 시작됐습니다.

fa3_12<홋카이도의 불꽃놀이>

불꽃놀이를 보고 있으니 7월 초 선선한 훗카이도의 밤과 달리 마음속에는 탁탁 불티가 튀며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fa3_13<료칸 앞에 마련된 작은 족욕탕>

료칸 앞에 마련된 작은 족욕탕에서 아버지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대화에 앞서 그동안의 아버지의 삶을 내가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지만, 서로 합심해 일상을 벗어나 먼 곳으로 여행을 온 덕분인지 이제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대화가 무르익을수록 아버지의 삶 속에서 내가 첫 울음을 내던 그 순간의 환희, 태어나기 전까지의 초조함, 그 후의 무거웠던 책임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아버지의 악보를 자연스럽게 젖히고 나만의 악보를 그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fa3_04<도야호수에서 아버지와 나>

 

 

여행의 멋진 엔딩,
구름사이 숨바꼭질한 하코다테 야경

 

마지막 날은 일본의 3대 야경으로 손꼽히는 하코다테로 향했습니다.

fa3_10<일본의 3대 야경으로 손꼽히는 하코다테 아경> 

선진문물을 제일 먼저 받아들여야 하는 항구도시의 운명을 말해주듯이 유럽풍의 건물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고, 붉은 벽돌의 창고들은 그 내부를 개조하여 오르골과 각종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fa3_05<오르골과 각종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 고등학교의 빽빽했던 자전거 주차장이었습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학년별로 정리되어있는 자전거를 보면서 그 작은 항구마을의 깨끗한 하늘이 이해되었습니다.

fa3_11<인상적이였던 한 고등학교의 빽빽했던 자전거 주차장>

저녁 하늘을 메운 구름들을 보며 하코다테의 야경을 볼 수 있을지 초조해졌습니다. 부자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이벤트로 남겨놓은 코스였는데, 엔딩장면이 구름 낀 상태는 아니길 바랐습니다.

케이블카를 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구름에 가린 야경을 보기 위해 옷을 여미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구름과 구름 사이로 숨바꼭질하듯 모습을 드러낸 하코다테의 야경은 감탄사를 지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순간을 위해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지만 결코 아쉽지 않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맺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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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걸려있는 아버지와 찍은 사진>

여행에서 돌아 온 후 아버지의 방과 제 방에는 커다란 액자가 하나씩 걸려있습니다. 도야호수를 배경으로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과 하코다테를 배경으로 한 사진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도 아버지는 힘이 들 때마다 사진첩을 들여 보시곤 한마디를 또 내뱉곤 하십니다.

“우리 다음엔 어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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